고래싸움에 새우등 30년 두부전쟁 관람기

고래싸움에 새우등
30년 두부전쟁 관람기

 
30여 년 전, 한 두부업체가 ‘포장두부’를 들고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곧 그들은 시장을 제패했지만 ‘옛 두부’ 맛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영세업체는 ‘영세’해 시장에서 사라져야 했다. 언젠가부터 대기업도 그 시장에 뛰어들었다. 두부는 이후 고소한 맛도, 담백한 멋도 잃은 채 싸움에 바빠야 했다.
 
글 / 김태혁

“파리에 사는 주부들은 빵을 사다 묵히지 않는다. 식사를 할 때마다 그녀들은 빵집에 가서 빵을 사오고, 남으면 버린다. 식사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부만 해도 그렇다. 막 사온 것을 먹어야지, 밤을 넘긴 두부 따위 먹을 수 없잖은가, 하고 생각하는 게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다.”
 - 무라카미 하루키 <두부와 공장 두부>
 

1984년 | 포장두부의 탄생
1981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무공해식품 판매점이 하나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 집을 두고 ‘풀무원’이라 일렀다. 당시는 건강과 무공해식품에 대한 관심이 막 자라기 시작한 때라 눈치 빠른 풀무원의 성장세는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갔다. 문을 연 지 3년 만에 그들은 전국 30여 곳에 판로를 구축하였고, 그곳에서 20여 종의 무공해식품을 판매하며 가장 큰 무공해식품 업체로 터를 잡았다. 그러던 1984년, 그들은 놀라운 결정 하나를 내리게 된다. 10명의 직원과 3,000만 원의 자본금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포장두부’를 시장에 내놓게 된다. 그 즈음 국내 두부시장은 전국적으로 600여 영세업체가 난립해, 모판두부 위주로 각 지역 상권을 나눠먹는 상황이었다. 두터운 진입장벽을 눈치 챈 풀무원은 ‘포장두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들고 두부시장에 홀홀단신 무혈 입성하였다. 이후 사람들은 아련한 두부 종소리에 귀 닫고 밤을 넘긴 두부를 먹게 되었다.
 
1984년~1995년 | 풀무원 vs 영세업체, 영토전쟁
1984년 2월 10일자 동아일보에서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전국주부교실중앙회는 최근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포장되지 않은 두부에서 많은 대장균이 검출되고 있다고 밝히고 두부를 꼭 가열조리해서 먹을 것을 당부한다. (중략) 모판두부 네 종류와 포장된 두부 세 종류를 검사한 결과 포장되지 않은 두부는 모두 대장균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여기서 일컫는 네 종의 모판두부는 600여 업체 중 무작위 네 개일 테고, 포장두부 3종은 아마도 풀무원과 함께 포장두부를 내놓은 초당식품, 영상선업의 것으로 추측된다. 기존 모판두부는 위생과 함께 황산칼슘 등의 첨가물이 들어가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무공해’와 ‘위생’을 본 소비자의 눈은 ‘포장’과 ‘전국유통’을 거역할 수 없었으리라. 풀무원은 상품화 첫 해 자본금의 두 배가 넘는 7,8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10년만인 1995년 1,750억 원으로 폭풍 성장을 일구었다. 그 사이 영세업체들은 시장을 떠나야 했다.
 
1999년~2003년 | 풀무원 vs 소보원, 4년전쟁
1999년 11월, 대한민국의 신문과 방송의 촉각은 한국소비자보호원(현 한국소비자원, 이하 소보원)의 보고서 하나에 쏠려 있었다. 소보원 자체 조사 결과 시판 두부의 82%에서 유전자조작농산물(GMO) 성분이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성분 검출은 풀무원, 영진식품 등 포장두부와 영세업체 모판두부를 가리지 않았다. 이후 매출이 급감한 풀무원은 소보원을 상대로 106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농협을 통해 구매한 100% 국산콩”이라는 주장에 소보원은 “4,000여 반복 실험을 통해 오류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맞섰다. 더 잃을 것도 없는 영세업체도 소송에 동참했다. 풀무원 측은 초호화 변호인단까지 동원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고, 2000년에는 이례적인 ‘소보원 현장검증’까지 실시한다. 이후 풀무원과 소보원은 미국 검증기관으로 두부를 보내 GMO 검출 여부를 확인하자고 합의했지만 201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계획은 무기한 연기된다. 그러던 2003년 5월 30일, 두부를 미국에 보내기 직전 풀무원 측은 소송을 전격 취하한다. 9월에는 영세업체도 소송을 취하해 4년여의 법정공방은 결론 없이 그렇게 싱겁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후 영하 40도에서 4년째 보관하던 증거물도 폐기처리돼 역사 속에 묻혔다. 이미 전체 두부시장은 4,000억 원 규모로 커졌고, 풀무원은 맏형이 되어 있었다.
 
2005년 | 풀무원 vs CJ Round 1, 소포제전쟁
소보원과의 논쟁을 끝낸 2003년, 대한민국 포장두부 시장규모는 1,900억. 시장은 커졌고, 업체도 10여 개로 늘었지만 풀무원은 포장두부의 75%를 차지하며 독주를 이어갔다. 하지만 풀무원은 의도하지 않은 복병과 만나게 된다. ‘종가집 김치’로 유명세를 타던 두산이 2004년 2월 두부 브랜드 ‘두부宗家(종가)’를 내놓으며 풀무원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2005년 5월에는 또 하나의 대기업이 가세했으니 바로 CJ다. CJ는 기자간담회에서 “3년여에 걸친 연구 개발로 ‘소포제’와 ‘유화제’를 넣지 않은 ‘웰빙 두부’를 선보이게 됐다”며 “그동안 한 업체가 독점해온 포장두부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소포제는 두유를 끓일 때 발생하는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유화제는 두부제조의 최종 단계에서 콩국에 간수를 넣어 응고시킬 때 급속응고를 방기하기 위해 각각 넣는 인공식품첨가물이다. 하지만 CJ의 기자간담회 하루 전, 풀무원도 급히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포제’를 넣지 않은 제품을 선보였다. ‘무소포제-무유화제’라는 제품 콘셉트 내세우려고 한 CJ에서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2008년 | 풀무원 vs CJ Round 2, 간수전쟁
이 둘의 신경전은 2008년 ‘해양심층수’로 또 한 차례 격돌한다. 그해 7월 CJ가 신제품을 발표하며 “풀무원은 유화제를 쓰고 있다”고 포문을 열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또 “재래식 모판두부가 1세대, 포장두부가 2세대, 소포제와 유화제를 넣지 않은 두부가 3세대라면 CJ의 신제품은 해양심층수와 콩 등 천연재료 외에 다른 성분을 배제한 ‘4세대 두부’”라고 자랑하였고, 이어 “경쟁사 제품은 식물성 유지를 유화제 역할을 하는 첨가물로 넣기 때문에 2세대에 머물러 있다”며 풀무원의 심경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풀무원은 “콩국이 균일하게 굳도록 천연 식물성 기름을 극소량 넣는데 이를 두고 ‘첨가물’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반발했고, “두부에 들어가는 기름의 양도 0.01% 이하이고, 100% 천연재료가 맞는데 경쟁사가 마치 화학적 성분으로 오인될 수 있는 선정적인 용어로 소비자를 현혹한다”고 주장하였다. 해양심층수전쟁이 있은 지 1년 후인 2009년 6월, 풀무원은 여기서 진일보한 ‘천일염 간수’를 전 제품에 적용하겠다고 선언한다.
 
2010년 | 풀무원 vs CJ, Round 3, 안전성전쟁
그러니까 이건 작년 일이다. 유화제와 해양심층수 탓에 마음을 상했었는지 이번에는 풀무원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 “국내 일부 대기업의 두부 제조방식인 전극판을 통한 두부 응고 방식은 전극판 부식 등으로 위험할 수 있다”고 선전포고를 날린 것이다. 이는 이른바 ‘전극판 강제응고 방식’인데 풀무원 측에 따르면 전류로 인한 자기장과 전극판 부식이라는 위험성이 있어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이후 사라진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또 자신들은 천연간수(무화학 응고제)를 넣어 천천히 응고시키는 ‘가마솥 방식’으로 두부를 생산한다고 상대를 자극했다. CJ는 즉각 허위사실 유포라고 반박하였다. 전극판 사용 방식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전례가 없으며, 전극판의 경우 치아교정용으로도 쓰이는 티타늄을 사용해 부식에 강하며 매우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또 CJ는 2006년 9%에서 2010년 26.7%(AC닐슨 조사)로 성장한 자사의 시장점유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비방하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논란이 한창이던 2010년 7월 당시 포장두부 시장은 풀무원(49.7%), CJ(26.9%), 대상(8%) 등 상위 3개사가 독차지하고 있었다.
 
연도별 CJ와 풀무원 포장두부 점유율
구분 2006 2007 2008 2009 2010
CJ 9% 17.9% 23.3% 25.1% 26.7%
풀무원 65.2% 56.5% 52.2% 54.7% 50.4%
 
(자료출처 : AC닐슨)
 
2011년 | 전경련 vs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
사실 대기업이 두부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제도 탓이었다. 그러니까 풀무원이 처음 포장두부를 만들던 1984년 정부는 두부를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하고 대기업 진출을 근본적으로 막아주었다. 풀무원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이러한 제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 제도가 2004년 8월 이후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대상과 CJ 등이 두부사업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거다. 2011년 6월, 정부가 다시 두부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전경련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으며 반발을 시작한다.
대기업의 두부산업 진출로 ▶ 위생수준이 높아지고 ▶ 일자리가 늘어나며 ▶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고 ▶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 있으며 ▶ 자체 경쟁으로 독과점이 낮아진다.
중소 두부업체의 대표격인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가 전경련의 주장에 대해 내놓은 공식 입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 중소업체도 식약청의 관리·감독을 받고, 대기업 생산의 70%를 OEM방식으로 생산하는 만큼 비위생적이지 않으며 ▶ 대기업 진출 전 2,300여 개에 이르던 업체가 1,580여 개로 급감했으니 일자리가 줄었고 ▶ 신선도가 중요한 두부는 오랜 유통기간이 필요한 수출에 적합하지 않으며 ▶ 대기업 진출 후 콩 사용량이 감소한 사실로 볼 때 두부시장이 커졌다고 보기 어려우며 ▶ 2, 3개 대기업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상황에서 독과점을 거론하느냐?
중소 두부업체의 반격이 시작된 걸까? 적합업종 선정을 놓고 한바탕 논란이 일고 있는 와중에도 대기업 두 곳이 두부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1년 | 두부 대기업 vs 동방성장위원회, 대기업전쟁
이제 전쟁의 불씨는 대기업과 동방성장위원회로 번져 활활 탈 기세다. 7월 초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시장 진출에 제약을 받는 대기업은 ‘6월 1일 기준 소속 회사 자산총액 합계액이 2조 원 이상인 기업’이다”라고 규정했다. 이 결정에 따르면 풀무원과 대상은 해당 기준에서 빠지지만 CJ제일제당은 ‘대기업’으로 분류돼 두부, 김치 등의 생산에 제약을 받게 된다.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한 시장경제 전문가는 “대기업 집단에 속한 기업은 사업에서 철수할지 몰라도 준 대기업에 속한 기업이 남아 있는 한 서민 규모의 시장경제 회복가능성은 희박하며, 오히려 시장경제의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전경련도 거세게 반대하고 나섰고, 탁생 행정이란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WTO나 FTA 무역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두부가 포함될 것인지 말지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니. 상생이라는 애초의 의도가 어떻게 지켜지는지도 지켜볼 일이다. 어떤 두부가 남고, 어떤 두부가 사라지고 돌아올 것인지 조금 더 기다려보자.
 
Epilogue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두부시장이 2.5배나 크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대기업이 뛰어든 사례가 없다. 법적 장치가 없었다는 사실이 우릴 조금 슬프게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두부시장이 2.5배나 크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대기업이 뛰어든 사례가 없다. 법적 장치가 없었다는 사실이 우릴 조금 슬프게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두부시장이 2.5배나 크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대기업이 뛰어든 사례가 없다. 법적 장치가 없었다는 사실이 우릴 조금 슬프게 한다. 그 많던 그 많던 동네 두부장수는 어디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