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돼지의 모습은 어떤가요?

살아있는 돼지, 본 적 있나요?   
                         
현재 국내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약 1000에 육박한다. 역사상 한국 땅에서 가장 많은 수의 돼지가 살고 있는 것이다. 돼지고기는 국내에서 1인당 소비량이 가장 높은 육류이기도 하다. 이렇게 돼지는 우리와 가장 밀접한 동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돼지가 어떤 모습인지, 돼지가 어떻게 사는 지는 잘 모르고 있다. 특히 나이대가 어릴수록 돼지는 그림책에서나 보는 동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과 생산과정을 세세히 알기 원하는 까다로운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왜 살아있는 돼지는 실제로 보기가 힘든 걸까?

+ 글 한송아 (동물자유연대 활동가) +사진 동물자유연대 외 +에디터 이향재

살아있는 돼지를 보기 힘든 이유
더럽고 멍청하다는 우리의 편견과 달리, 돼지는 공간이 허용된다면 배변자리와 잠자리를 구분해 생활하는 청결하고, 똑똑한 동물이다. 많은 연구를 통해 돼지는 개보다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사람으로 치면 3살 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고 밝혀졌다. 
‘돼지가 조이스틱 게임을 할 줄 안다’는 재밌는 연구도 있다. 또한 사회적 동물인 돼지는 소규모로 그룹을 짓고 다른 개체와 유대하며 살기 좋아한다. 그룹 안에서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해서 살기 때문에 그룹에 낯선 개체가 들어오면 매우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돼지의 몸에는 땀샘이 없어 더울 때는 물이나 진흙에 뒹굴기를 좋아한다. 몸을 덮는 두터운 털이 없어 추위에도 매우 약하다. 크고 넓은 코를 가진 돼지는 후각이 뛰어나고, 코끝에는 촉각이 함께 발달해있다. 이에 돼지는 코로 땅을 파서 풀뿌리나 흙 속에 있는 벌레를 찾아 먹는 습성이 있다. 


더위를 식히려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 돼지,미국의 Farm Sanctuary란 농장동물 구조, 보호단체에서 보호 중인 돼지의 모습.

돼지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꼬리는 기분이 좋으면 위로 말려올라가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래로 내려 기분을 표현한다. 어미돼지는 출산이 가까우면 짚이나 풀을 이용해 둥지를 만드는 습성이 매우 강하다. 주변에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판단되면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수 Km까지도 이동한다. 
그러나 오늘날 돼지를 사육하는 방법은 이런 돼지의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현대 축산업은 오랜 가축 사육의 역사 가운데 근 100년 동안 가장 많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  돼지는 더 이상 온전한 돼지의 모습이 아니다. 국내 인구 수 1/5에 해당하는 돼지를 우리가 실제로 잘 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대형축사에 수백, 수천 마리를 가둬 키우기 때문이다. 
오늘날 축산업은 대형농장 중심으로, 대기업 중심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소규모 농장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돼지가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공장식 축산방식은 방역을 이유로 농장과 외부와의 차단을 더욱 심해지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대형축산업자들의 로비로, 외부와 차단된 대규모 농장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를 조사해 사진과 영상으로 대중에게 알리는 동물보호 운동가와 내부고발자를 저지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어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빨,꼬리 잘린채 60cm 폭 감금틀에 갇힌 어미돼지의 삶

 
분만틀에 갇힌 어미돼지는 새끼들과 자유롭게 교감할 수 없다. 새끼돼지는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이빨이 잘리고, 수퇘지는 고기품질을 이유로 거세 당한다
 

딱딱한 바닥에서 오물과 뒤섞여 사는 돼지는 코로 땅을 파는 습성을 행할 수 없다. 돼지의 트레이드 마크인 꼬리도 볼 수 없다. 돼지도 아픔과 슬픔,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란 사실이 망각된 공장식 농장. 성이 충족되지 않는 공장식 농장의 환경은 돼지의 스트레스를 높여 다른 개체를 공격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서로 상처 입히는 것을 막으려고 축산업자들은 돼지의 이빨과 꼬리를 자르는 방법을 사용한다. 물론 마취도 없이. 

어미돼지의 삶은 더욱 가혹하다. 어미돼지는 60cm 폭의 ‘스톨(Stall)’이란 감금틀에 갇혀 평생 새끼 낳는 일만 반복한다. 몸을 돌릴 수조차 없다. 감옥에서 가장 큰 형벌이 독방 처분이라는데 어미돼지는 어미로 태어난 죄로 다른 개체와의 교류를 할 수도 걸을 수도 없이, 앉았다 일어났다만 반복할 뿐이다. 새끼를 낳고 나면 20여일 만에 재임신을 위해 새끼와 강제로 떼어 놓는다.
어미돼지는 결국 무료함과 스트레스로 쇠 울타리를 계속 물고 씹는 이상행동을 보이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반복된 임신과 운동부족은 만성 근골격계 질환과 생식기 질환을 야기한다.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계속 새끼를 낳는 어미돼지가 농장을 벗어나는 순간은 생식능력이 떨어져 도태되는 때이다. 
운송과 도살과정에서도 돼지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겁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돼지를 강제로 차에 태우기란 쉽지 않다. 빠른 작업과 편리함이 돼지의 고통보다 우선시 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선 돼지를 쉽게 차에 태우고 내리기 위해 관행적으로 전기 충격기를 사용한다. 도살과정은 전기나 가스를 사용해 기절 후 목을 자르는 방혈작업, 그리고 뜨거운 물에 담그는 탕적작업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완전히 기절하지 않은 돼지가 도중에 깨어나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일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햇볕이나 바람을 막을 장치가 없는 차량에 운송된 돼지, 110kg 돼지 한 마리 당 신문지보다 작은 0.37제곱미터 공간에 실려 운송된다.

현재 사육되고 있는 돼지 99% 이상이 이렇게 공장식으로 사육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 사육현실을 알지 못한다. 우려되는 것은 언젠가는 지금의 사육방식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돼지는 ‘원래 그렇게 키우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더욱 팽배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동물복지 개선 움직임, 국내 축산업에도 나타나는 변화
돼지들에게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다. 전세계적으로 동물이 가진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도 충족하지 못하는 공장식 사육방식을 점차 개선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 유럽의 경우 2012년 암탉을 철장에서 기르는 배터리케이지 시스템을 폐지했고, 2013년부터는 어미돼지의 스톨사육을 금지했다.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에서도 동물복지를 저해하는 최악의 사육시설인 스톨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또 소비자들의 관심과 요구로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퉈 스톨사육을 하는 농장의 돼지고기는 이용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부터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도’가 도입되어 2012년 산란계, 2013년 돼지에 대한 인증이 시작됐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으려면 스톨사육을 해서는 안 된다. 또 적정한 사육밀도를 준수해야 하고, 돼지의 꼬리나 이빨을 자르는 것도 금지다. 
어미돼지에게는 푹신한 깔짚이 제공되고, 다른 농장보다 새끼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진다. 놀기 좋아하는 돼지들은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제공 받는다. 공장식 농장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악취도 동물복지 농장에서는 나지 않는다. 동물복지 농장은 동물뿐 아니라 사람이 사는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삶의 질과 관련된 사소한 것까지 수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농장동물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늘과 햇볕을 선택할 권리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딜 수도, 자기가 낳은 새끼와 함께 있을 수도 없이 그저 인간이 정해준 틀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모든 농장이 당장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할 수도 없는 일, 우리는 고통 받는 동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재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돼지농가는 국내에 단 1곳이다. 인증은 받지 않았어도 비교적 인도적으로 돼지를 사육하기 위해 노력하는 농가들도 국내에 몇 군데 있다. 이런 농가의 축산물을 선택해 이용해주는 것은 보다 많은 동물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매우 중요한 실천이다. 그런데 몇 군데 없는 동물복지 농가의 축산물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 지 일일이 알아보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동물들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일주일에 하루 채식’하기.
동물의 생산방식과 밀접히 연결된 우리의 육류소비를 바꾸지 않는 한 공장에서 기계처럼 살아가는 돼지의 삶은 변화될 수 없다. 완전 채식을 하지 않더라도 평소 먹던 고기의 양을 줄이는 것은 고통스럽게 살다 죽어갈 생명을 살리는 직접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과도한 육류소비 감소는 한정된 공간에 과도하게 사육되는 동물의 수를 적정하게 유지하게 만든다. 이는 곧 동물복지를 존중한 사육방식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만드는 길이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는 동물의 고통 문제만 있지 않다. 과도한 육식문화는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축산분뇨와 온실가스는 환경오염 및 기후변화를 부추긴다. 따라서 과도한 육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이런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막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동물뿐 아니라 나와 지구를 위한 채식하기.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정해서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생각하는 돼지의 모습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