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구경 여행은 이제 그만

인도적인 여행자가 되는 방법
‘재주는 코끼리가 넘고, 여행은 사람이 즐긴다?’ 


최근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친환경 여행, 캠핑 등 여행 문화가 많이 바뀌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도 여행하면 여행지의 자연과 지역주민이 몸살을 앓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다가 한 가지 추가하자면, 관광지의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글. 이형주 동물자유연대 정책기획국 팀장/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Cruelty Free International)동아시아 캠페인 매니저
+사진. 동물자유연대 외
+에디터. 송수연



동물학대의 온상지로 변해가는 제주도 
‘원숭이쇼, 바다코끼리쇼, 흑돼지쇼, 코끼리쇼, 돌고래 만지기 체험…’
인터넷 검색창에 ‘제주 여행’을 치면 뜨는 광고들이다. 제주도에 대한 특별한 향수와 애정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참 안타까운 일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제주도’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돌, 바람, 여자’외에는 유채꽃과 옷을 맞춰 입고 사진을 찍는 신혼부부 정도였던 것 같다. 걸어서 제주도를 여행하는 올레꾼들이 생겨나고, 저가항공사들이 성수기만 피하면 시외버스 요금보다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인 항공권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제주도는 ‘국민여행지’가 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모여드는 단체관광객과 관광버스 십 수 대를 한꺼번에 전세해 몰려드는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생겨난 이름도 희한한 각종 테마파크, 박물관, 놀이시설 중에 유독 인기를 끄는 것이 바로 동물쇼, 동물체험이다. 문제는, 이런 곳에서 운영되는 공연 내용을 보면 사실상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슬픈 재주를 넘는 엄마 잃은 코끼리
코끼리 트래킹은 태국 같은 동남아 관광 상품에는 거의 빠지지 않는 순서다. 그러나 이 코끼리들이 사람을 등에 태우고 걷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안다면, 결코 그 등에 타서 마음이 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인도차이나반도 북부에서는 일 년에 오십에서 백 마리의 어린 코끼리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포획된다. 이 과정에서 아기를 지키려는 어미 코끼리들은 대부분 사살된다. 포획된 코끼리는 사람을 두려워하도록 길들이기 위해 일주일을 좁은 나무틀에 갇혀 쇠꼬챙이로 찔리고, 매질을 당하고, 굶주림에 시달린다. ‘파잔 의식’이라고 불리는 지옥과도 같은 가혹행위가 끝나면 코끼리들은 눈에 초점을 잃고, 어미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이 코끼리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슬픈 동물이 되어버린다. 이 코끼리들은 세계 각지로 팔려나가 관광산업에 이용된다. 

이런 사실을 고사하고서라도, 코끼리의 자연스러운 습성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제주도의 코끼리 공연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생후 몇 년 되지 않은 아기코끼리들부터, 훈련할 때 눈 옆, 항문 주위 등 민감한 부분을 찌르는 쇠꼬챙이인 ‘불훅(bull hook)’ 자국의 오랜 상처가 완연한 늙은 코끼리들까지, 무대에 올라 테크노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들고, 물구나무를 서고, 코로 훌라후프를 돌리고, 농구를 한다. 심지어 아파서 죽은 듯한 연기를 하면 의사 복장을 한 코끼리가 달려오기까지 한다. 코끼리는 생태적 습성상 앞발을 들거나 등에 무엇을 태우지 않는다. 이 ‘묘기’들은 코끼리들이 살아온 고통스럽고 피곤한 삶의 증거다. 그러나 마냥 신이 난 관광객들은 코끼리들의 재주를 보며 함께 음악에 맞춰 관광버스 춤을 추고, 천 원짜리 지폐를 코끼리 코에 던지면서 환호한다. 


타고, 만지고, 미끄러지고… ‘동물 수난 시대’ 
코끼리 공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원숭이들이 차례대로 물구나무를 선 채로 걷고, 관람객이 외치는 구호에 맞춰 윗몸 일으키기를 한다. 기계적으로 드럼을 치고, 기타를 연주하는 흉내를 내고,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원숭이들의 눈 속에는 공허함뿐이다.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원숭이는 진행하는 조련사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고, 청중들은 폭소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정도로 자의식이 있고, 숫자의 개념을 이해해 덧셈 뺄셈이 가능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 유인원인 원숭이가 수년 동안 매일 똑같은 재주를 부리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돌고래 ‘체험’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운영되는 시설에서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조련사들은 1m가 안 되는 깊이의 수조에서 돌고래의 꼬리를 잡아 못 움직이도록 고정하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의 돌고래를 빙 둘러싼 사람들은 돌고래를 수십 분씩 쓰다듬고, 문지르기에 여념이 없다. ‘궁지에 몰린 쥐’가 따로 없다. 한 자세로 정지한 ‘스테이셔닝(stationing)’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돌고래에게 생태적으로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신체적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다가, 하루에 수십 명의 손길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는 상황은 돌고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그뿐만 아니라, 돌고래는 사자,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자신보다 작은 포유류를 잡아먹는 상위 포식자다. 외국에서는 수족관에서 고래류에 공격당하는 사고가 매년 수차례 발생한다. 심지어 조련사가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있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이런 극한 상황에 처한 돌고래와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들이 함께 좁은 수조에 들어가는 ‘체험’은 돌고래와 관람객 모두에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목숨을 건 체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떠난 여행, 피해는 동물에게? 
이 외에도, 흑돼지 수십 마리를 미끄럼틀에 몰아넣고 살기 위해 우왕좌왕하며 미끄러지는 모습을 구경하는 흑돼지 체험, 조랑말이 서커스를 하는 조랑말 체험 등 참 ‘체험’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곳은 다양하기도 하다. 이렇게 동물의 복지나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도 고려하지 않은 전시 형태는 다른 도시에서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지만, 유독 제주도 같은 관광지에서 더 인기를 끄는 이유가 있다. 시간과 경비를 들여 떠난 여행에서 일상에서는 하기 힘든, 진귀한 경험을 하고 싶은 여행객들의 소비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래 등에 새우등 터진다고,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여행지에 사는 약한 생명이다. 이는 비단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곳곳에서 이빨을 뽑힌 사자, 호랑이는 관광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원숭이들은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코끼리부터 낙타, 당나귀는 사람을 태운 채 끝도 없이 걷고, 곰은 산채로 쓸개즙을 뽑힌다. 코끼리 상아를 비롯한 각종 야생동물의 뿔과 이빨은 기념품으로 팔린다. 하긴, 1980년대 말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s)’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성행한 보신관광, 성매매 관광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것을 보면, 동물에게 인도적인 여행을 하자고 외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진다. 

‘공정여행’과 동물의 다섯 가지 자유 
‘공정무역(fair trade)’에 이어, 환경을 배려하고 현지인의 삶을 존중하는 ‘공정여행(fair travel)’의 개념이 등장했다. 공정여행을 위한 행동 지침에 현지인의 인권 존중하기, 노동 착취나 성매매 투어를 하지 않기와 함께 강조되는 것이 바로 ‘동물을 학대하는 투어나 공연을 하지 않기’와 ‘멸종위기 동식물로 된 기념품 사지 않기’이다. 꼭 공정여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으로 마음을 채우려고 떠난 여행이 다른 생명에 고통을 주고 착취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영 찜찜한 일이다. 

동물을 이용해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대부분의 업체는 ‘이 동물들은 좋은 환경에서 잘 보호받고 있다’는 말로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회유한다. 어떤 경우는 ‘수익금은 동물을 돕는데 쓰인다.’라고 까지 말한다. 이럴 경우, 동물복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인 ‘동물의 다섯 가지 자유(Five freedoms)’를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된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도 비록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명시된 이 다섯 가지 자유는 동물의 ‘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왊贊?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어디 아픈데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번쯤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동물이 공연을 하면서, 사람을 태우면서 이 다섯 가지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세상을 치유하는 ‘힐링여행’ 
“난 ‘힐링’이 필요해.” 휴가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바쁜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정신적 치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서식지에서 잡혀와 고통과 굶주림으로 야생성을 잃은 동물들, 과연 이 동물들을 타고 만지는 행위가 ‘치유’라는 단어와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을까.

같은 여행지를 가더라도 느끼는 감정이나 남는 추억은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면, 여행의 의미는 ‘어디서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어떻게 여행했고 무엇을 느꼈는가?’에 있는 것 같다. 이번 휴가는 나 자신의 ‘힐링’과 함께, 다른 생명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세상을 치유하는 진정한 ‘힐링여행’을 떠나보자. 나의 발자취로 인해 상처받는 생명이 없는 여행.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결국에는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여행이 정말 의미 있는 여행이 아닐까. 

(참고로, 제주 여행객들에게 한가지 팁을 주자면, 제주 북쪽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바다에서 떼를 지어 평화롭게 수영하는 남방큰돌고래들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동물을 사랑하는 여행자가 되기 위한방법

1.동물의 생태적 습성을 억누르도록 강요하는 오락, 관광시설은 피한다. 
- 코끼리 트래킹, 동물쇼, 동물을 이용한 싸움 등은 관람하지 않으며 호랑이, 사자 등의 맹수와 사진 찍기는 거부한다. 이 동물들을 포획하는 중 어미는 사살되고, 어린 동물은 위험성을 없애기 위해 이빨, 발톱 등을 제거하며 끔찍한 물리적 폭력이 가해진다. 
- 대신, 배를 타고 나가는 고래관광, 망원경을 이용한 조류 관찰 등 자연 서식지의 동물을 관찰하자. 태국에는 트래킹 대신 관광산업에 이용되던 코끼리를 치료하고 보호하는 시설 중 방문이 가능한 곳도 있다. 

2.야생동물로 만든 상품을 사지 않는다.  
- 해마다 전 세계에서 불법 거래되는 야생동물의 양은 원화로 2천억 원 규모에 달한다. 
- 쓸개즙, 뱀술 등 야생동물로 만든 약재, 식품과 코끼리 상아, 야생동물의 모피, 깃털, 가죽, 뿔, 이빨 등으로 만든 제품은 구매하지 않는다. 국내 반입시 멸종위기종일 경우 관세법 위반에 해당해 처벌받을 수도 있다. 여행사를 통해 단체 관광 상품을 구매할 때는 반드시 미리 확인한다. 
- 많은 관광객들이 현지에 갈 때까지도 여행 일정 중 동물을 이용한 관광 순서가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통 음식 체험에 산 채로 조리하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된 동물을 이용하지는 않는지, 트래킹이나 동물쇼, 곰농장 방문의 일정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구매하지 않는다. 

3.적극적으로 행동하기 
- 동물이 고통 받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그 소유주나 업체에 항의한다. 
- 현지 가이드에게 이야기하거나 귀국 후 여행사에게 알려서 방문 중단을 요청한다. 소비자의 목소리가 가장 큰 힘이 있다. 동물학대행위가 분명하다면 지역 경찰이나 동물보호단체에 신고한다. 
-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거나 SNS, 블로그 등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도 작은 일 같지만 큰 변화를 만드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