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만 있냐? 육식주의도 있다

육식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육식주의 똑바로 보기 1.

 
공자가 말했다. "모난 술잔이 모나지 않으면, 그것이 모난 술잔이겠는가?
난 술잔이겠는가?" (6-25 子曰 : "觚不觚, 觚哉! 觚哉!")
-공자 <논어> 중


+비건 편집실  +참고 자료. Carnism Awareness & Action Network



정명 正名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할 경우 선생님은 무슨 일부터 하겠습니까?” "그야 물론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다." "역시나 선생님은 답답합니다. 하필 그것을 바로잡는다는 말씀이십니까?" "너는 정말 무식하구나. 군자는 자기가 잘 모르는 점에 대해서는 입 다물고 있는 법이다. 만약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주장이 정연하지 못하고, 주장이 정연하지 못하면 政事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정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禮樂이 베풀어지지 못하고, 禮樂이 베풀어지지 못하면 刑罰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고, 형벌이 바르게 적용되지 못하면 백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조차 모르게 된다(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이름을 붙였으면 반드시 주장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고, 주장을 했으면 반드시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자기주장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법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할 때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은 '이름을 바로 잡는 일'이라 하였다. 현실에서 어떤 이름에 해당하는 인간이 그 이름에 합당한 '실'을 갖추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이름은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공자의 정명 사상은 그 '실'을 갖추는 자만이 그 이름을 지닐 수 있다는 사상이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사물과 개념에 올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계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공자의 ‘정명 사상’과 오늘날의 채식주의
조용히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이든, 채식주의라는 꼬리표를 달고 당당하게 선언을 한 사람이든,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너무나도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고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고기 먹는 문화와 맞서게 된다. 보통의 한국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을 시작할 때 즈음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쁨 또는 충격에 적극적으로 채식의 이로움 또는 육식의 해로움을 설파하고 나서다 얼마 있지 않아 주변의 반응은 내 마음 같지 않게 차갑기만 하다는 현실을 알게 되고 그들이 나를 불편해한다는 느낌을 받고 나서야 ‘전도’를 멈춘다. 왜 나를 그토록 뒤흔들어 놓았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할까? 내가 이효리가 아니라서? 오바마가 채식한다고 나서면 사람들이 달라질까? 실제 오프라 윈프리는 그녀의 쇼에서 채식 식단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인기 최고 토크쇼의 주인공은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설사 마음이 움직였다 한들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다시 ‘정명’으로 돌아가자. 대부분의 채식주의자들이 정의하는 문제는 ‘인간이 동물을 먹는다’이며 그 해결책은 육식을 멈추는 것, 즉 ‘채식’이다. 모든 초점이 ‘채식주의’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논쟁은 ‘채식주의자’는 괜히 까다롭게 구는 사람이 아니라, 지구와 동물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이며, 풀만 먹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사람임을 강조하는 데 그치고 만다.

육식의 해로움, 그다음은?
세계의 채식주의자들은 여태껏 매우 성공적으로 동물성 제품과 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켜왔다. 의학 전문가들이 식물성 식단의 합리성을 증명했는가 하면, 은밀하게 행해진 조사들은 공장식 축산의 끔찍함을 만천하에 알리는 데 성공했다. 전염성이 강한 독감의 유행과 오염된 동물성 식품의 대량 리콜 사태는 축산업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었고, 채식 식당과 식품, 요리책은 급증하는 추세이다. 갈수록 더 많은 유명 채식인들이 자신의 신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관심은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도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동물성 제품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제는 인식을 높이는 것에서 벗어나 다음 단계로 발돋움할 때이다. 문제의 근본이자 뿌리인 ‘사람들이 애초에 동물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다가가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신념 체계는 아직 아무 이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올바른 이름을 붙일 때인 것이다. 문제 해결의 첫걸음 떼기: ‘正名’.

‘채식주의’가 아닌 ‘육식주의’에 초점 맞추기
지배적인 주류 시스템은 많은 부분, 그 자체가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유지된다. 즉, 주류의 신념과 행동은 무시한 채 ‘다른’ 쪽, 혹은 ‘상대편’인 비주류-여기에서는 채식주의-에 초점을 맞추면서 말이다. 실제로, 지배적 주류 시스템은 우리 사회에는 오직 채식주의자와 그 외 사람들이 존재하며, ‘주류’라는 것은 아예 없는 것처럼 작용한다. 그러므로 채식주의자가 육식주의가 아닌 채식주의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모르는 사이 그 시스템이 계속해서 드러나지 않고, 검토되지 않은 채로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그 손안에서 놀아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육식주의보다 채식주의에 집중하는 것은 동물을 먹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하게 된 것, 즉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오해를 더 강화시키게 되고 만다. 오직 채식주의자만이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신념 체계를 가진 것처럼. 그것은 또한, 미묘하지만 강력하게, 동물성 제품의 생산과 소비가 ‘육식주의자들이 직면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채식주의자들이 풀어야 하는 과제로 여기게끔 한다.

예컨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르지 않으면서도, 성차별주의 반대편에 서서 많은 페미니스트 운동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 대신 섹시즘(성차별주의)에 집중함으로써, 남성 지배 시스템을 폭로하고 성차별 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육식주의는 이 시스템의 혈류와도 같은 몇몇 특정한 방어기제 위에 조직되었다. 이러한 육식주의의 방어기제는 폭로되는 순간 그것이 가진 대부분의 힘을 잃게 된다. 예를 들면, 정당화의 3N과 같은 방어기제 - 동물을 먹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 - 가 지어낸 이야기일 뿐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더 이상 육식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채식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육식주의를 유지시키는 방어기제에 빛을 비추고 스포트라이트 속에 남겨둠으로써 그 기제의 힘을 빼앗는 것이다.

육식주의 언어 바로잡기
육식주의가 스스로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는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는 육식주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육식주의 언어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이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비채식주의자 non-vegetarian’이다. 이 말은 잘못된 말임과 동시에 육식주의를 폭로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하는 데 큰 작용을 한다. ‘Meat eater(고기 먹는 사람)’이라는 말도 동물이 고기라는 인식을 강화하고 먹는 행동 자체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 신념 체계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느끼게 한다 – 하지만 우리는 똑같은 이유로, 채식주의자를 ‘plant eater(식물 먹는 사람)’라고 부르지 않는다. (채식만이 신념 체계에 의한 것이라는 것) 또한, ‘육식 동물(carnivore)’, ‘잡식 동물(omnivore)’이라는 단어도 한 사람의 생리학적인 성질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이념적인 선택이라는 의미는 어디에도 없다. 잡식 동물은 식물과 동물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동물을, 육식 동물은 살기 위해 다른 동물의 살을 먹어야 하는 동물이다. 이렇게 ‘잡식 동물’과 ‘육식 동물’은 동물을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 육식주의의 견고한 신화인 – 가정을 뒷받침할 뿐이다.
 
이름 붙지 않고 이미지화되지 않은 모든 것―
다른 것으로 잘못 이름 붙고 접근하기 어렵게 된 모든 것.
부적절하거나 거짓된 언어 아래 의미가 함몰되어 기억 속에 묻혀 버린 모든 것―
그것들은 단지 말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이 되리라.
  • 에이드리언 리치 (Adrienne Rich), 미국 페미니스트 작가 (1929~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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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식주의 똑바로 보기 2.는 다음주에 업데이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