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왁커피 먹지마세요
- 2015-02-20 12:57:40
- 월간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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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학대의 산물, 르왁커피
최근 몇 년간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커피’라고 하면 커피 믹스나 커피포트에서 내려 먹는 커피를 떠올리던 것은 옛말이 되었고, 하나둘씩 생기던 커피 전문점들이 어느 사이엔가 거리를 점령해 버렸나 싶더니, 이제는 세계 곳곳의 커피 원산지에서 수입된 다양한 커피 원두를 갈아서 손으로 내려 먹는 ‘핸드 드립’ 커피를 즐기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세계 3대 커피’라는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등 이름도 생소했던 커피를 취향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골라 마시는 ‘커피 마니아’ 층이 생겨나면서, ‘루왁 커피’가 주목을 받고 있다. ‘루왁’이라는 말은 커피 종류나 원두가 생산된 지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동물의 이름이다. 영어로는 ‘아시안 팜 시벳(Asian Palm Civet)’, 우리나라에서는 ‘말레이 사향고양이’라고 불리는 사향고양잇과 동물을 서식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루왁(Luwak)’이라고 부르는데, 요즘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루왁’이라는 단어는 마치 커피 종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글. 이형주(동물자유연대 정책기획국 팀장)
강제로 먹이는 커피콩
사향고양이는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두루 분포하는 야생동물이다. 전체적으로는 검은 빛을 띠지만 양쪽 코 옆과 눈썹 위로는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흰 털이 돋아나 있다. 어두울 때만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인 사향고양이는 곤충이나 작은 포유류, 파충류, 새의 알 뿐 아니라 과일과 커피 열매 등을 고루 먹는 잡식성 동물이기도 하다. 이 사향고양이가 들에서 따 먹은 커피 열매는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위산과 효소의 작용으로 단백질이 분해되어 배설되는데, 이 배설된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를 ‘루왁 커피’라고 부른다.
루왁 커피의 역사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인들이 커피 농장을 경영했는데, 농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인 일꾼들은 커피를 맛볼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사향고양이 배설물에 섞인 소화되지 않은 커피 열매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 특이한 향이 소문이 나면서 네덜란드인까지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초 커피 무역업자들에 의해 소개되기 시작한 루왁 커피가 미국·영국 등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을 비롯한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는 야생의 사향고양이를 따라다니며 분변에서 커피를 채취하던 방식에서, 사향고양이를 포획해 케이지에 가두고 강제로 커피콩을 먹이는 농장 형태의 방식으로 변화했다.
좁은 철창의 고양이들
사향고양이들은 좁은 철창을 가로세로로 겹겹이 쌓는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에서 사육된다. 공장식 축산에서 닭을 키우는 방법이다. 자기 몸보다 조금 큰 공간에서 강제로 급여되는 커피 열매만을 먹고 배설하는 일이 전부인 삶을 살아야 하는 사향고양이들은 정신질환으로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증에 시달리고, 자신의 팔다리를 뜯어먹고 털을 뽑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이며, 영양 결핍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이런 잔혹한 루왁 커피의 진실이 영국 BBC 등 언론사에 의해 전 세계에 폭로되자, 루왁 커피 생산자 연합에서는 면적 2㎡·높이 2m가량의 사육장 면적을 정하고 6개월 사육 후 방사하도록 지도하겠다고 하지만 사향고양이를 포획해 사육하는 농가는 늘어만 가고 있다.
허영심이 낳은 결과
이제 인도네시아에서는 해가 져야만 활동하는 사향고양이를 밤새도록 쫓아다니며 배설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예전의 방식으로 루왁 커피를 채취하는 일은 없다고 현지 주민은 말한다. BBC 보도로는 시중에서 야생에서 채취되었다고 광고하는 루왁 커피도 사육장에서 채취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를 원두를 보고 판별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수확된 루왁 커피는 맛과 품질도 떨어진다는 것이 커피 무역상 등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루왁 커피의 향이 독특한 것은 사향고양이의 몸속에서 소화되는 과정뿐 아니라 사향고양이가 향이 좋은 커피 열매를 찾아 먹는 ‘선택 과정’ 때문이기도 한데, 농장에서는 저급 원두를 강제로 급여해 그 향과 질이 떨어진다는 소리다. 결국에는 ‘루왁 커피’라는 이름이 붙은 비싼 커피를 즐기고 싶은 허영심 때문에 애꿎은 사향고양이들이 철창에 갇혀서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100g에 50만 원을 호가하는 루왁커피는 현지 농장주들이 무역상에 팔 때는 1㎏당 20달러 정도에 거래된다. 최저 임금이 시간당 1달러인 인도네시아에서도 생활 수준이 낮은 지역의 주민들에게 사향고양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에는 ‘자본주의’라는 탈을 쓴 문명이 야생동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지역 주민까지도 동물을 학대하는 삭막한 삶을 살도록 몰아가고 있다.
‘그만해라, 많이 먹지 않았나’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몇 년 전 나온 영화에서 ‘그만해라, 많이 먹지 않았느냐’하는 말을 방언으로 한 대사가 인기를 끈 일이 있었다. 나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나는 말이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그동안 너무나 많은 수의 생명이 희생되었고, 너무나 많은 종의 동물이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며, 아직도 너무나 많은 동물이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 생태계 안에 얼마나 다양한 종의 생물이 그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가는 그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증명하는 척도다.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섭취하는 농장동물들, 춥다고 두르는 동물 털과 모피. 약으로, 구경거리로, 실험대상으로, 우리와 다른 모습을 가진 생명을 소유하고 파괴하는 갖가지 이유에 이제는 ‘고급문화’를 즐기기 위한 허영심까지 거들고 있다. ‘루왁 커피’ 마시는 당신, 커피잔에 담긴 커피처럼 당신의 마음도 우아하고 향기로운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